신형철 저자의 [인생의 역사]와 함께 구매했다. 늦장 부리다가 뒤늦게 읽고 있는 이 책은, 사실 내게 "관점"이나 "해석"에 대해서 알려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창 소설을 많이 읽을 때, 국내 작가 위주의 책보다는 해외 작가들이 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국내 저명한 평론가에 대하여 무지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평론집도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슬픔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인 느낌과 공부에서 느껴지는 정적인 느낌이 굉장히 묘했다. 수많은 책들로 구성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매일 출근하면서 읽는 책인데, 출근길이 기다려질 때도 있다. 안에 있는 책들이 궁금해지고 지루하지 않아서 행복하게 했다. 사실 각 편당 짧게는 3~5페이지 정도라서 글을 오래 읽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물용으로도 적합할 거 같다.  실제로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속도가 붙어서 몰입력이 강한 소설 말고도 다른 책을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책의 구성이나 페이지 수나 비교적 좋을 거 같아서 추천해주기도 했고. 인상 깊은 글들이 너무 많아서 벅차기도 하고, 계속 "생각"을 했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을 완독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게 아닐까?


 

<표지>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을 품고 있는 소설,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들 중 하나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소설. 한 사람의 표정들을 모두 모은다고 그 사람의 얼굴이 되지 않는다. 한 소설이 건드리는 '작은 진실'은 독자적인 것이고, 과학이나 철학이 제시하는 '큰 진실'(진리)의 한낱 부분들이 아닐 것이다. 전체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들, 그런 것들의 세계이니까.

 

우리가 특정한 순간에만 슬픈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체로 슬프기 때문이 아닌가. 인간은 본래 슬픈 짐승이고 우리는 모두 슬픔의 식민지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저항하는 일이, 요즘의 내게 예정만큼 쉽지가 않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재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 적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아폴론의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몸통은, 바로 우리의 삶이 언제나 그처럼 불완전하고 미완성적인 상태에 있다고, 그러므로 변화란 '예외도 없고 끝도 없는'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말한다. 삶이 아주 느린 자살처럼 느껴질 때 나는 이 시를 자주 복용한다. 
** 릴케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흔히 인문학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월리스에 따르면 그것은 곧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이란 곧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것. 어떤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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