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이다. 개인적으로 책제목을 연상하게 만들지 않아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보통 부제가 안에 있는 내용들을 압축한 표현들이라서 제목보다는 부제를 보고 읽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한 글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서점에 가서 훑어보면 읽는 책이 바로 '리베카 솔닛'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마치 결심을 끝마쳤다는 듯이 장바구니에 있는 저자의 작품 중에 [야만의 꿈들]과 [오웰의 장미]를 구매했다. 사실 더 읽기 쉬운 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은 크게 두 챕터로 되어 있는데, 저자인 리베라 솔닛이 다룬 장소는 총 2 곳이다. 첫 번째로는 네바다 핵실험장, 두 번째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미국의 두 장소는 정말 낯선 공간이다. 그 낯선 장소의 히스토리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들까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있었다. 긴 시간들을 글로 몇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글을 읽는데 머리로 상상하게 되는 글을 정말 오래간만에 읽었다. 챕터별로 새로 얻는 정보와 인상적인 글이 셀 수 없어 장소별로 나눠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오늘 적을 [네바다 핵실험장] 부분에서는 장소에 대한 글보다는 저자의 '걷기'에 대한 예찬론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지만, 내 책은 이미 다른 인상적인 글들 또한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미국 서부에 대한 궁금증이나 작은 히스토리를 얻어갈 수 있으니, 읽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듯하다. 물론,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른이라면 다음 기회에 읽어보길 바란다. 기행문이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외.


 

<표지>

 


 

나는 새로운 것을 향해 떠나는 여행에서도 그 이면에 자리한 여러 몸짓의 역사를 발견하고 싶고 네바다 핵실험장 같은 장소로 우리를 이끄는 수렴선을 보다 많은 사람이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이루어진 모든 몸짓의 구체성을 인식하는 동안 나는 그 이면의 추상성이 지닌 무게를 감각하려 애썼다. 목격자가 얼마나 적건, 보이는 것이 얼마나 적건, 핵실험장은 우리 역사를 구성하는 무수한 결정적인 선들이 만나는 중심부다. 그러나 수갑 찬 손으로 다른 사람의 땀투성이 발에서 가시를 뽑아주는 동안 이 모든 것을 잊지 않고 떠올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사막에 모무는 즐거움은 지적인 즐거움이자 숭고한 즐거움으로, 내 몸이 어느 장소에 속해 있을 때 느끼는 감각적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성장기를 보낸 언덕 많은 연안 지역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다. 그레이트 베이슨에서든 남서부 지역에서든 차를 몰고 사막을 가로지를 때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들을 바라보면서 저기까지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지를 상상한다. 처음에는 그저 한 발씩 내딛는 걷기, 즉 의지에 따른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리듬에 따라 걷는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자발적인 행위 중에서 가장 자발적이지 않은 행위에 가깝고, 숨쉬기와 심장 박동은 또 하나의 리듬으로서 걷기의 리듬을 관장한다. 걷기는 새들이 비행하는 법을 배워 나는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배움인 동시에 우리가 가장 무의식적으로 얻게 되는 배움이다. 걷기는 땅의 리듬을 배경으로 몸의 리듬을 측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막은 실수나 모호하을 용납하는 지형이 아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대체로 멀리 있다. 눈으로 거리를 가늠할 때마다 사막의 유목민을 향한 경의가 차오른다. 사막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 중에는 내 필명성도 있다. 

 

전쟁은 남자들의 문제였지만, 오염은 여자들의 문제가 되었다. 또 폭탄은 통제, 즉 자연과 전쟁과 적을 통제하고 심지어는 공포를 통해 시민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폭탄 자체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 나고 말았다.... 핵전쟁이 홀로코스트에 대비해 몇 번이고 계속해서 폭탄을 터뜨리는 리허설로 바뀌면서 전쟁은 어머니들이 다룰 문제가 되어버렸다. 전쟁이 더는 국경 지연이나 먼 미래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의 뼛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되었고 이미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걷기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딘가에 가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걷기 위함이다. 소로는 우리에게 걷기의 두 가지 방식과 각 유형의 걷기에 관한 생각, 그리고 내가 유토피안인과 아르카디아인을 분류한 방식을 보여준다. 물리학자들은 소로처럼 한 가지 유형의 걷기를 위해 길을 나섰다가 다른 유형의 걷기를 했다. 유럽의 장엄한 숲 속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동안 그들은 천천히, 인식하지도 못한 새에, 네바다 핵실험장을 향해 거침없이 행진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원폭으로 인해 서구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차이들, 즉 관찰자와 피관찰자, 물질과 에너지, 과학과 정치, 전쟁과 평화라는 차이도 사라져버린 듯하다. 원폭이 생겨난 이후로 모든 장소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소멸할 수 있게 되었고 원자력은 영구적인 전쟁 대비 수단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원폭이 시공간을 초월해 너무나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탓에 오염과 분리라는 개념도 붕괴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서도 여전히 변화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제 생각에 민주주의와 자유는 쟁취해야 하는 것, 매일매일 쟁취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가진 특권을 행사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 삶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도 잃고, 토착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할 권리도 잃고, 낙진이나 핵사고나 또 한 번의 체르노빌 사고로 자유도 잃게 될 거예요. 정말이에요. 핵 시설이 점점 노화하고 핵무기와 파편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일은 다시 또다시 발생할 거예요. 앞으로 더 나빠질 일만 남은 거예요. 

 

 
야만의 꿈들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저항의 움직임을 목격하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감춰진 역사를 찾다 장소가 가르쳐준 희망과 가능성의 서사 쓰기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앞을, 미지의 것을 내다보며 산다. 말하자면 희망은 이 세상의 야생성, 예측 불가능성을 옹호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내가 핵실험장에서 처음으로 이해한 힘, 즉 대중 권력, 시민사회, 비폭력 직접행동처럼 역사를 만드는 힘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요세미티의 변화는 그런 희망과 힘의 본보기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요세미티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돌아와서 1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장소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우리가 그걸 허하기만 한다면”
저자
리베카 솔닛
출판
반비
출판일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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