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박완서 작가님의 책은 10대 때 제외하고 읽어보지 않았던 거 같다. 워낙 학창 시절 때 시험 연관된 소재의 책으로 많이 출제되었기 때문에 찾아서 읽게 되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최근엔 작가님의 책이 서점 내 디스플레이 구역에 한 두권씩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내가 작가님 글을 안 읽은 세월을 체감하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글 중 35편을 엮어낸 책이다. 사실 글 하나하나가 따뜻하게바라본 시선이 느껴져서 그런지, 아님 그런 마음을 항상 품고 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스며들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스며드는" 그런 감정이다. 사람에게도 해당되지만, 내겐 작가들도 그랬다. 한때 친구들에게 작가 컬렉터라고도 별칭이 붙였으니 말이다. (TMI지만, 10대 때는 기욤 뮈소,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외국 작가의 작품들을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난 매력이 느껴지는 책 1권을 읽고, 그 두근거림을 잊지 못하는 순간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본다.
이번엔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살펴보고 있는데, 아직 구매하지 못했다. 읽고 싶은 작가의 책들이 또 생겼는데 어느 책부터 읽을까 구매하는 사이에 또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여전히 나의 장바구니는 넘쳐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잔잔한 포근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일시적이지만 품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나에게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상하게 했지만 살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서글픈 나이엔 어릴 적을 공상한다. 이 서글픈 시기를 그렇게 곱디곱게 채색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이 아닐까?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옛 성현의 말씀 중에도 이런 게 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 하물며 인간에 있어서 어찌 취할 게 없는 인간이 있겠는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아무도 그의 쓸모를 발견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견처럼 보람 있고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알아주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들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은 더 큰 행복감이 될 것입니다.
그 최초의 인식이야말로 자연과의 교감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달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쓸쓸할 때는 달도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기쁠 때는 달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집을 떠나 처음 서울에 와서 산동네 빈촌에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때 달이 서울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가. 그래서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에겐 달을 보고 고향이나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정서지만 요새 자라나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떨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손자의 말은, 동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었지만 그 달구경을 녀석이 얼마나 오래 기억할지는 의문이다. 달보다 휘황한 게 너무 많은 밤이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가 ‘윤슬 에디션’으로 새로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그가 남긴 에세이 660여 편을 모두 살피고 그중 베스트 35편을 선별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작품 선정에만 몇 개월이 소요된 만큼 박완서 에세이의 정수라고 칭하기에 손색이 없다. 초판 한정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윤슬 에디션’은 빛과 물의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담아내는 영국 아티스트 고든 헌트의 작품을 표지 그림으로 사용했다. 시공간을 넘어 두 사람의 역동적이면서도 따뜻하고 다채로운 그림과 글이 맞닿아 책의 가치를 한껏 더한다. 조그만 진실이라도 가감 없이 전하고자 했던 박완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 저자
- 박완서
- 출판
- 세계사
- 출판일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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